정당 지구당 폐지 20년, 쌓여가는 편법들

사무실·직원 두면 불법, 개인사무실을 당협사무실로 활용

2023-11-27 11:43:31 게재

당협위, 당원교육·여론수렴·민원해결·선거운동 도맡지만 비공식조직

원외엔 지원 없이 책임만 떠맡겨 … 국회의원은 '후원회 사무실 활용'

실태 조사한 국회입법조사처 "각 당 험지 더 열악 … 지구당 부활 검토"

"당협 위원장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무실을 두고 있다고 봐야죠. 주로 개인 사무실을 당원협의회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는데, 사무실이 있어야 민원 업무 등을 위해 찾아오는 당원들을 만나고 일을 할 수가 있거든요."(국민의힘 관계자)
인천시선관위, 정치후원금 홍보 대형 현수막 설치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23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정부 인천지방합동청사 외벽에 인천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정치후원 활성화 및 정치인의 기부행위 상시제한·금지 홍보 대형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일반적으로 연구소나 포럼 등을 만들어서 사무실을 운영한다. 선거 때에는 포럼 사무실에 현수막이나 간판을 걸기도 한다. ○○ 희망포럼, ○○ 지역포럼 등등."(경남지역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

당원협의회(지역위원회) 사무실을 법적으로 둘 수 없기 때문에 편법을 행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호소하는 목소리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 등 전국에 있는 정치권 인사를 심층면접하면서 폐지된지 20년 된 '지구당' 부활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27일 국회입법조사처 행정서비스 실태조사 TF(정치의회팀)는 '당원협의회 운영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실태조사 결과 당원협의회는 여론 수렴과 지역 민원 해결, 당원 관리와 교육,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과 선거운동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사무소를 둘 수 없고 정당의 공적 조직으로 인정되지 않는 등 제도적 제한으로 인해 활동의 어려움이 있다"면서 "과거 지구당에서 수행했던 기능은 시·도당으로 이관됐지만 한정된 인원으로 시·도당에서 그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당원 모일 사무실이 없어서…" = 실태조사는 원외 당협위원장, 정당 관계자, 정당정치 연구자,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등 모두 10명을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구당은 정당의 창당과 해산, 입당과 탈당 등을 책임지는 정당 구성의 기본단위였지만 고비용 정치구조를 이유로 2004년 폐지됐다.

보고서는 "당원협의회에 사무소를 둘 수 없기 때문에 당원 교육이나 모임을 위한 장소 마련에도 어려움이 있다"며 "현역 국회의원이 당협위원장인 경우 후원회 사무실을 이용할 수 있지만 원외 당협위원장은 당원이나 지역 주민들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무실이 없어서 시·도당 사무실을 활용하거나 편법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사실상 험지에서 당원을 관리하고 출마를 준비하는 원외위원장의 경우에는 적지 않은 사비를 털어야 하는 등 많은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영남에서, 국민의힘의 경우 호남에서는 더 어렵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약세 지역에서의 당원협의회 활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힘들다는 얘기다. 경남지역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은 "운영비는 월 400만 원 정도 쓰고 있다. 지역에서 위원장하면서 돈 안 쓰면 욕먹는다. 그렇게 돈쓰다가 정치 폐인이 되기도 한다. 저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모은 돈 다 쓰면 알바를 하던, 다른 경제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못해도 한 달에 300~400만 원은 써야 하는데 돈이 없는 사람은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지구당이 부활되지 않는 한 현역의원이 되지 않으면 길게 정치하기 어렵다. 그래서 명망가나 돈 있는 사람이 정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못해도 한 달에 300만~400만원 써야" = 국민의힘 전북지역 당협위원장은 "전라북도의 경우 당원협의회에 대한 운영비 지원은 없다. 전라남도는 지역에서 들어오는 당비의 40%를 당협에 지원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북도당은 지원이 없다"고 했다.

보고서는 대안으로 "당원협의회에서 당원명부를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당원 교육을 당원협의회가 주체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권한과 공간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조사 기간 만났던 당직자들이나 당원협의회 관계자, 선관위, 학계 전문가 등은 사무소 설치와 1~2명의 유급 사무직원을 두는 것은 민원 처리와 당원 관리 등 최소한의 정당 활동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편법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사례들이 많아 법이 현실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 후원회 사무실을 운영하는 현역의원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사무소 설치는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원협의회에 사무소 설치를 허용할 경우 기존의 지구당에서 나타났던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운영의 투명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시도당과 선관위의 감사를 받도록 해 회계관리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당비를 당원협의회 운영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후원회를 허용해 운영비 마련을 위한 자금 마련을 양성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여야도 "사무실 설치는 해야" = 보고서는 "지역에서의 정당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당의 구성 요건으로서 지구당을 부활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할 수 있다"며 "정당정치가 발달한 국가들에서 정당의 지역조직을 법률로 제한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당원협의회가 당원 관리와 교육 등 지역에서의 정당 활동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다"고 했다. "21대 국회에서 설치 단위, 명칭, 시·도당과의 관계, 유급 사무직원의 수 등 지구당 부활과 관련된 쟁점들이 논의되었다"고도 했다. 21대에서 이원욱 우원식 김영배 박재호 이은주 노용호 서영교 등 7명의 의원들이 당원협의회 한계를 보완하는 내용을 담은 정당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구 단위가 아닌 구·시·군 단위의 지역 조직 설치 방안을 제안해 놓고 있다. 입법조사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1대 전반기 정치개혁특위에서는 지구당 부활과 관련해 기본적인 합의를 이뤄지만 하반기 정개특위에서는 "과거 지구당 폐지의 원인이 되었던 사당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지구당 부활은 오히려 반개혁적 방향일 수 있으며, 그보다는 당원협의회에 사무실 설치를 허용하는 정도가 적절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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